[발행인 칼럼] -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강서경제신문 승인 2023.03.30 19:51 | 최종 수정 2023.03.31 10:03 의견 0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이슈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경제는 국가의 안위가 걸려 있는 국방의 문제와 함께 여.야의 정쟁 대상이 될 수 없다. 민초는 배가 불러야 불만이 없는 법이다.

따라서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은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을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둘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에게는 대한민국 1호 세일즈맨이라는 수식어가 붙곤 한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펜더믹은 우리에게 많은 삶의 변화를 가져왔다. 경기침체를 막아야겠다며 단행한 초저금리 정책은 통화량을 늘려 천정부지로 부동산 가격을 올렸다. 이제는 반대로 그 통화량이 목을 죄고 있는 형국이다. 통화량을 회수하는 길은 금리 인상이 가장 쉽고, 효과적일 것이다. 또한 금리 인상 정책은 통화를 회수하기도 하지만, 대출을 억제하여 통화량을 조절하기도 한다.

급격한 금리 인하와 상승, 정책의 극약 처방은 결국 “정부의 실패”로 이어져 금리정책에 장단을 못 맞춘 국민만 고통에 시름하고 있다. 정부 정책의 잘못은 오롯이 국민이 떠안아야 할 몫이 되고 말았다. 유례없는 부동산 가격 폭등은 영끌 대출을 안하면 바보로 만들더니 이제는 그 영끌 대출이 목을 죄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나, 청춘들에게 결혼은 이미 부익부, 빈익빈이 된지 오래다. 선택 받은 청춘만이 결혼할 수 있다니..요즘 말로 말인가? 막걸리인가?

부모가 사업을 하여 재력을 축적하고 있던가? 양가 부모가 대기업의 임원이라도 되던가? 남녀가 모두 대기업에 다니고 있어서 둘의 연봉이 1억을 넘든가? 할아버지가 물려준 상속재산이 있다던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대부분 중소기업을 다니고 있는 청춘들의 설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청춘들에게 물어 보면 결혼을 안하겠다고 한다. 왜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걱정도 안한다. 아니 걱정을 한들 해결해 줄 능력이 이 사회에는, 부모들에게는 없다. 정확히는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애써 외면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육아에 대한 문제로 인해 결혼한 자녀들의 출산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하는 것이 금기시 되고 있다. 이 사회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은퇴 후 여유로운 삶은 꿈도 못 꾸고 또 다시 일터로 내 몰리고 있다. 부모를 부양할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들에게 버람받는 첫 세대라고 하지 않는가? 그 만큼 100세 시대의 노후자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현실이 되었다. 이 상황에서 자녀들의 결혼과 육아를 책임졌다가는 자칫 본인들의 노후가 걱정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물론 연금등 사회보장제도의 미비가 한몫하고 있음이다.

우리의 청춘들이 무엇을 잘못했는가? 이 와중에 사회 지도층들은 자기 자기자식 챙기기에만 급급하다. 자기 자식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뒷바라지 하고 만다. 돈 없고 빽 없는 소시민들은 그 들의 들러리 인생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평생을 꿈도 꾸지 못할 실개천의 가재,붕어로 살아 하는가? 전문 영역이라는 빌미로 출범한 법학전문대학원과 의학전문대학원의 등장은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다리를 제거하여 아예 꿈을 잘라 버렸다. 경제적인 부를 축적한 자들만의 카르텔을 만들어 감히 넘볼 수 없는 계급사회를 만들어 버렸다.

청춘 남녀가 사랑을 하면 함께 있고 싶고,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것이 당연한 이치임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이자 감당하기 힘든 보통의 청춘들에게 결혼은 사치가 되고 말았다. 학자금 대출금도 못 갚고 있는 현실에서 언제 저축해서 결혼자금을 마련한다는 것인가?

언론에서는 비트코인이니, 플렉스이니, 화이어 족이니 하면서 과소비를 부추긴 결과, 2.30대 젊은이들이 명품소비와 골프장으로 몰려 들며 위화감을 조성하기 까지 하고 있다.

그 결과 뒤늦게 주식과 비트코인 바람에 편승한 청춘들은 곤두박질 친 주식시장과 코인시장으로 인해 또 다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영끌로 아파트를 장만하지 못한 청춘들은 빌라에 신혼집 전세를 얻었으나, 이제는 사기꾼들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어차피 이생망을 외치며 포기한 인생, 결혼도 못하는데 즐기면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 그냥 흥청망청 쓰고 보자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래 가지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논할 수 있을까?

정부에서나, 광역.기초자치단체에서는 임기응변식의 예산을 쏟아 부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인기영합 위주의 정책들을 이미 오래전부터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형국이다. 이제와 멈추었다가는 정치인들의 밥줄인 표가 날아간다. 단기처방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퍼주기 바쁘다.

오히려 더 줄 수 있는 것은 없나 하고 전국 최초를 부르짓으며, 찾기 바쁘다. 과연 그런 것들이 청춘들이 궁극적으로 필요로 하고 것일까? 선거철에 일단 주는 건 받고 찍을 때는 다른 사람 찍어라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 공짜로 주겠다는데 그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이미 살만한 기성세대들인 어른들이 청춘의 정책을 주도하는 한 실패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청춘들과 진정으로 머리를 맞대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 보려 고민하지 않는다. 아니 해결 능력이 없어 애써 외면하는지도 모른다.

공무원 면접비를 지원해 준다. 영어시험 응시료를 지원해 준다. 학원비를 지원해 준다. 실업자에겐 6개월간 용돈도 쥐어 준다고 한다.
공공장소를 결혼식장으로 대여해 준다. 아이가 태어나면 축하금도 준다. 유치원비도 지원해 준다. 특정 자치단체에서는 근로자들에게 아침밥까지 챙겨 준다고 한다.

전국 최초라는 수식어로 언론 플레이를 한다. 정책만 나왔다 하면 전국 최초란다.

요즘말로 웃프다

모든 것이 표를 의식한 인기 위주의 정책들이다. 처음 주는 것은 어려워도 한번 준 것을 회수하기는 더 어렵다. 곳간의 재정은 어찌되었든 다음 재선을 위해 내 임기동안은 일단 퍼주고 만다. 뒷 감당은 내 몫이 아니라 후임자 몫일테니 말이다.

이런 것들은 일시적인 단비가 될지는 모르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보다 중장기적인 안목의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이 사회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국가 재정과 지방정부의 재정은 화수분이던가? 부자들로부터 징수하는 세금으로 복지 정책의 재원을 조달함에도 불구하고 부자들은 악의 축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위정자들은 자기 자식과 본인을 비롯한 주변 지인들 챙기기는데는 최우선이면서, 말로는 늘 국민이 우선이라고 외치면서 국민은 그들의 정권연장과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도구로 전락한지 노래다.

대부분의 정책들은 복지 포퓰리즘에 초첨이 맞춰져 있다. 또한 디지털 시대에 SNS를 통한 여론 전파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청춘들을 최우선으로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청춘들의 타겟이 되지 않으려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에 따라 단기 공공 일자리는 60세 이상에게 대부분 기회가 주어진다. 여,여를 막론하고 역대 정권들은 공공 일자리를 통해 실업률을 방어하는 아전인수격으로 활용되곤 한다.

그 틈새에 끼어 있는 4050 새대들은 경제의 가장 중추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늘 정책 우산에서 소외되어 있다. 이는 또 다른 세대갈등을 야기하고 있음이다.

선거철만 되면 온갖 인기위주의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결국은 효과도 없는 예산 낭비만 반복되고 있다. 똑 같은 처방의 반복이다.

정부,지방자치단체들이 청춘을 위해 집행하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모아 중앙에서 보다 면밀한 중장기적인 정책으로 내놔야 한다.

지금 당장이 아닌 먼 미래 세대들에게까지 구제할 수 있는 정책개발이 있어야 한다. 국가 백년대계라는 큰 그림이 보이질 않는다. 미래를 위한 준비가 없다.

사회지도층들은 뒤로는 온갖 특권을 누리면서 일반 대중에게는 선심성 지출로 투정 부리지 말고, 주는 거나 받아 먹고 만족하면서 살라고 한다.
이는 자기들의 특권을 눈감아 달라면서 조용히 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공정경쟁,공정사회는 청춘들에게는 최고의 가치가 될 수 밖에 없다.

일본에서는 한때 초식남이 유행했다고 한다.

남성다움을 상실하여 역동적이지 못하고 초식동물처럼 온순하고 착하기만 하여 삶에 대한 애착이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비젼없는 청춘을 일컸는 말이었으리라.

공원에 걸려 있는 현수막 글귀는 비록 비둘기에만 해당되지는 않을 것이다.

“비둘기가 자연의 일원으로 돌아가 당당하게 스스로 먹이를 찾을 수 있도록 먹이를 주지 마세요”

자연으로 날아 올라 스스로 먹이를 찾기는 커녕 인간들이 주는 각종 먹거리로 토실토실 비만이 된 비둘기는 결국 몸이 무거워 날지도 못하는 닭장안의 닭이 되어 가고 있음이다. 불만 많은 쏘크라테스가 아니라 말 잘 듣는, 일시적으로 배부른 돼지를 만들려 하는 것인가?

여,야는 지금 더 많이 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이제는 여가를 즐겨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근로시간 연장과 단축을 논하고 있다.

입에 쓴 약은 병에 좋고 입에 달콤한 약은 병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욕을 먹어도 과감하게 미래에 투자할 수 있는 용기있는 정책과 정치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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